-
숙명대 50주년-학술 "향연"
여성 민족 사학의 명문 숙명여대 (총장 김옥렬)가 20일로 개교 50주년, 창학 82주년을 맞는다. 숙명여대는 이를 기념, 20일의 기념식 및 경축 공연을 비롯하여 『2000년대의
-
(4)제2부 신라 천일청 일행 제철기술 전수|사철 많은 파마-출운 지방서 "활짝"
중국(추고쿠)의 북단 도근 (시마네) 현 송강(마쓰에) 시의 사철 송강온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북쪽으로 달러 한시간만에 출운지방(도근현동부)에 닿았다. 이곳은 일본 고대신화의 3분
-
좌파 극렬 단체 중핵파 소행인 듯|일 황궁·미 대사관 포격
일본인이 신성시하는 일황의 궁성과 최대 우방으로 치는 미국의 주일 대사관 건물에 사제 로키트탄이 날아든 사건은 일본 경찰 및 각 정보 기관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. 25일
-
(8) 대한제국의 최후(8)|발굴자료와 새 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
「이또」(이등)의 죽음후 일본은 한국병합으로 내달았다. 1910년 5월 어느날 「가쓰라」(계태낭)는 수상관저로 육군대신 「데라우찌」(사내정의)를 불렀다. 「데라우찌」는 그 스스로
-
(5)-대한제국의 최후(5)
일본의 한국 병합 공작에 항쟁한 안중근 의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. 그는 을사조약을 강요했던 [이또]를 저격함으로써 민족의 독립의지를 내외에 시위했다. 그는 일본법정을 거부
-
(3)대한제국의 최후③제자·일중 김충제
대한제국의 폐멸을 촉진하는 세사람의 바람잡이 민간주역-일본의 이른바 대륙낭인과 한국의 일진회 수괴들이다. 특히 일진회는 정부레벨의 공작을 한발앞서 부추기는 꼭두각시였다. 「이또·히
-
외무부 정보상황실 공개
이범석 외무장관은 14일 상오 취임 후 첫 실·국장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『실·국장들은 당분간 소관사항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보고해 달라』 면서 『당분간 매일 실·국장회의를
-
(21)국정의 본산「세종로 1번지」34년…명감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.
반민법 파동은 건국 초의 가장 불행했던 정치사건이다. 민족에 대한 반역행위를 다스린다는 것은 광복이 가져다준 당위였다. 그럼에도 반민법 시행 1년은 줄곧 격동으로 지샜다. 명분과
-
고위공직자 - 저명인사 귀국보고 의무화
정부는 효율적인 외교수행과 각종 해외정보의 창구단일화를 위해 해외에 나가는 고위공직자와 각계저명인사들에 대해 여행국과의 제반외교문제를 설명해주고 대신 귀국보고를 내도록할 방침이다.
-
대사직 정원축소 추진
정부는 효율적인 외교정책수립을 위해 직급별외교직 인윈 재조정및 외무행정의 전산화등을통한 외교행정 개선을 올해 주요 외교시책의 하나로 추진할방침이다. 외무부에 따르면 외무행정 개선방
-
정승화 전 육삼총장 공소장
피고인은 본적지에서 정시영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47년 서울광신산업학교를 졸업, 48년 4월 육사 제5기생으로 졸업과 함께 육군소위로 임관됐다. 그 후 육군방첩부대장·제7사단장·육본
-
박대통령 시해사건 전모
원흉 김재규는 이미 발표한 바와같이 업무수행과정에서 무능이 드러나 대통령각하로부터 수차에 걸쳐 힐책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박대통령각하께 드리는 보고·건의가 차경호실장에 의해 제동
-
개인별 범죄 사실
김재규 ◇인적사항 ▲본적=경북 선산군 선산읍 이문동78 ▲주소=서울 성북구 보문동 7가184의10전 중앙정보부장·54세 ◇학경력 ▲43년12월 안동농림중학교 졸업 ▲46년l2월 육
-
(8)목포「탐진회」
목포는 동양화의 산실이라고 할만큼 산수화를 아끼고 있어 다방이나 식당·선술집·심지어는 쓰러져 가는 판잣집 등에서까지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. 이처럼 전 시민의 동양화에 대한 관심
-
(상)일 외교문서가 밝힌 「종전 30년」…그 내막
일본외무성은 5월31일부터 동경마포태외교사료관에 비장되어 있던 전후 외교문서 중 종전부터 1952년4월28일 「샌프런시스코」강화조약발효까지의 일본정부와 연합군점령군과의 협상과정을
-
(895)제33화 종로 YMCA의 항일운동(5)|전택부
1905년 9월 노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한국은 완전히 일본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. 그리고 조정은 매국 간신배들로 득실거리자 이에 뼈저린 고독을 느낀 고종은 강직하고
-
(153)김을한|해방에서 환국까지
일본의 책임은 크다. ▲영목일씨의 담=지난 1964년 11월22일 이은 전하 내외분은 무사히 한국에 돌아가시었다. 나는 하네다 공항까지 나가서 전송하였는데 아드님 이 구씨까지 세
-
(89) 해방에서 환국까지|김을한
당시 영친왕이 귀국을 주저하게된 또 한가지 이유가 있었다. 소위 왕위계승 문제였다. 봉건시대와 달라서 군주가 직접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요, 1910년 한일합병과 더불어 왕실은 한
-
두얼굴의 소련인「루이」기자
지난해 10월 소련기자「빅토르·루이」(42)가「런던·이브닝·뉴스」지의 특파원자격으로 자유중국에 들어가 전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진바 있다. 중공을 고립시키기 위한 소련의원 대한 포
-
『국민투표』를 움직이는 중추신경|『골라인』앞둔 사령탑들
중앙선관위는 요즘매일30건꼴의투표법관계질의를 심의처리했다. 한선관위원은 『.이같은 「질의의홍수」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선거때는 없었던일이라면서 『법조문이모흐한 덕분에 우리가 골탕을
-
(3) 나주 배
찌는 듯한 무더위가 살며시 가실 무렵 배(이)는「풍요한 가을」의 맛을 낸다. 볏단에 겨운 촌부가 배를 한 입만 베밀어 먹어도 「서그렁」하는 그 시원한 맛엔 온 몸의 땀이 식는다.